무엇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무엇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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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dwdw1213 댓글 0건 조회 3,187회 작성일 21-12-07 13:22작가명 | 이지훈, 조익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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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1-12-06 ~ 2021-12-19 |
휴관일 | 없음 |
전시장소명 | 차茶스튜디오 |
전시장주소 | 22314 인천 중구 신포로15번길 58 |
전시서문을 편지글로 대신하며
흔적을 더듬는 당신에게
꽤 오랜 시간 존재의 정의는 무엇인지, 그것을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을 기준으로 두고 생각하게 되었죠. 자연의 흐름으로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갑니다.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존재라니. 순리이니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삶과 죽음 사이에 그 사실을 망각하기 위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찾아보았어요. 그러다 한 학자의 의견에 깊이 마음이 동했고, 제가 몸담은 예술에서 다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빌렘 플루서는 인간이 하는 소통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았더라고요.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잊게 해준다는 것이죠. 아, 물론 저는 죽음으로의 귀결이 반드시 무의미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각자의 언어로 해석해보고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볼 필요는 있다고 여겼죠.
이 전시는 언젠가 어떤 흔적을 더듬어본,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시간을 갖게 될 당신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가 지나간 흐름을 탐구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는 분명 존재의 마주함이 있을 것이고, 존재를 두고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있겠죠. 작가 이지훈과 조익준은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신은 미세한 빛, 움직임, 소리를 마주합니다. 작가 이지훈의 작업은 각기 다른 모양을 가졌어도 방금 말씀드린 요소들로 끊임없이 ‘있음’을 증명해요. 조금 더 가까이 가볼까요. 일그러진 커다란 구의 형태를 띠는 <Deformed Perception>는 그 안 불빛의 깜빡거림으로 당신의 시각적 확장을 일으킵니다.
양쪽에 있는 <OverFlow>와 <Form. 1>은 빛뿐만 아니라 여러 개 팬(fan)의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요.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움직임과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낯선 상태는 <그 모든 걸 덮어 버리길 바랍니다>에서도 드러나요. 이미 어떤 존재는 연속적으로 흐르고 있으나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낼 때가 있죠. 하지만 당신이 마주하기로 작정했다면, 그 존재는 영속하다는 겁니다.
이 모든 작품으로 당신은 시각적, 청각적 감각만 느끼다가 또 다른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이지훈은 인식에 균열을 주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각자의 반응이 다를 것을 기대합니다. 저도 이것이 삶과 죽음 사이에 수많은 흔적을 들추어 볼 수 있다고 여겨요. 당장 눈앞에서 인식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충분히 의미 만들기를 하죠. 이렇게 존재를 다시 마주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작품과 작품 사이를 지나가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아있지 않나요?
작가 조익준은 존재의 정의는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임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 증거가 되어, 완전하지는 않아도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이죠. 그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작은 형태의 인간이 자아를 갖고 마주한 다른 인간과 소통하며 어떤 것―이것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지만―을 생성한다고 봅니다. 이것을 그는 <type-221>로 당신에게 전달합니다. 당신은 전시장 2층에 만들어진 외부의 빛이 차단되고 조용한 공간에서 그가 만든 행성의 이미지와 일대일 상호작용을 하게 됩니다. 연출된 이 공간에서 잠시 당신과 작품 사이에 오가는 적막을, 새로운 이야기를 느껴보시길 바라요.
그 방을 나오면, 사방에 <grid> 시리즈가 놓여있습니다. <origin-the sphere>은 <grid> 시리즈를 전시장에 입체로 옮겨둔 것이에요. 조익준은 당신이 <origin-the sphere>의 검은색 구를 사방에서 마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다양한 모양의 격자무늬를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로 대입해보는 상상을 해볼게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밟고 있는 자리를 우리는 사실 잘 인식하지 않지만, 아주 멀리서 누군가 당신을 바라본다고 하면 검은색 구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거예요. 이것으로 일정 부분 ‘있음’이 증명됩니다.
하지만 조익준은 당신을 포함한 어떤 존재의 ‘있음’을 단순히 위치하는 것으로 결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충분히 사유하기를 제안합니다. 어딘가에 자리한 모든 존재의 사유가 있을 때, 그리고 그 사유가 서로에게 오갈 때 그제야 진정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소통이야말로 서로를 기억해주고, 서로를 정의해주는 요소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작가의 작품이 나타내는 것처럼 인간은 어떤 ‘흐름’ 안에서 세상을 인식해요. 그리고 그 앞에서 혹은 안에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유합니다. 당신이 서 있던 자리엔 또 다른 누군가가 오겠죠. 한 발자국 위에 다른 발자국이 얹히고, 그 모양들은 모양대로 흔적이 남을 겁니다. 지나간 바람으로도 체취를 느낄 수 있는데, 당연한 것이겠죠. 이렇게 무엇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무엇이 자리합니다. 그러다가 또 흘러가고 다시 흘러오고요. 존재는 흐름의 반복과 멈춤 동작을 하고 결국 오래, 계속 존재합니다.
참 다행이에요. 생성했다가 소멸되는 과정에 당신이 소중하게 여긴 존재를 인지할 수 있어서요. 흐름의 연속 안에서 흔적을 더듬으며 우리가 마음에 둔 존재를 연결시켜보아요. 모양이 다를지라도 이전의 무엇과 지금의 무엇, 그리고 이후의 무엇은 새로운 무엇이 되어줄 겁니다.
이 전시가 당신이 동의하는 순리에 약간의 재미가 깃들길 바랍니다. 오늘 당신과 저의 존재가 이렇게 연결되었듯 말이죠. 어디서든 기억하겠습니다. 어느 흔적의 틈에서 우리 또 만나요.
2021년 12월, 정다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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