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OCI YOUNG CREATIVES 김피리 개인전 《네발 달린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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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CImuseum 댓글 0건 조회 75회 작성일 25-04-03 13:32
작가명 김피리
전시기간 2025-04-10 ~ 2025-05-24
휴관일 일, 월
전시장소명 OCI미술관
전시장주소 03144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관련링크 http://ocimuseum.org/portfolio-item/%ea%b9%80%ed%94%bc%eb%a6%ac-%eb%84… 5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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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발 달린 짐승들


 

잃을 수 있는 서사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를 쓴 사람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관한 호기심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얼마나 독자를 끌어당겼는가에 따라 이 호기심은 배가 된다. 이야기의 진실이 저자의 진실에 가닿기 마련이므로,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이는 다른 이야기도 서술할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허투루 의식하지 않는다. 제 삶을 겪은 당사자로서의 당위를 토대로, 저자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의무와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야기는 저자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도 아니지만, 저자의 삶 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닌 셈이다. 게다가 창작된 이야기에서 저자의 현실을 느낄 수 없을 때조차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와 이야기의 저자를 견줘가며 읽는다. 그것은 언제나 피할 수 없이 행간을 따라다닌다. 이처럼 서사는 때때로 저자의 삶을 내보이는 유리 감옥이다.
 
이 공공연한 공개가 주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드러내는 서사가 있다면, 대개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언술은 불가피한 것이다. 김피리의 그림이 그렇다. 김피리의 그림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은연중에 강박적으로 재방문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 잦은 방문은 의도된 것도, 예정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다. 이렇게 불시에 일어나는 방문에 있어 김피리의 수동성은 필연적이다. 반면 그의 그림은 이 수동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며 예기치 못한 균형을 찾는다. 그림 안에서 김피리는 서사를 추동시키는 힘과 그 힘을 누리는 존재를 새로 창조한다. 이때 김피리의 능동성은 전지전능하다. 그러나 이들이 드러나는 방식, 즉 내러티브는 서사가 으레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고 여기는 미덕을 비껴간다. 그림으로 드러난 장면이 ‘선택’되어 그려진 데에 서사의 극적인 기승전결이라던가, 교훈과 깨달음을 주는 계기 따위는 관련이 없다.
 
확실한 플롯, 선명한 캐릭터, 개연성 있는 전개는 김피리가 구축하는 세계관에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김피리가 그림에서 만든 세계는 목적 있는 서사가 추구하는 극적 계기들과 거리를 둔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종교화나 역사화가 흔히 취하는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그림과 그림 사이 개연성에서 보이는 ‘잉여’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종교화나 역사화가 그림에 연대기적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서사의 밀도를 극대화한다면, 김피리의 그림은 시점과 플롯이 선명하지 않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느 한 점의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고, 모든 그림에 각각의 계기로 내재한다. 모든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대기처럼 작동한다. 그러니 그림과 그림 사이의 인과 관계를 따져보려는 시도 같은 것은 이내 물거품이 된다. 하나의 그림이 다른 그림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서사는 자립한다. 이때 ‘잉여’는 자립의 상징이자 실천이 된다.
 
그림 속 존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 있다.’ 그림에 포착된 그들의 몸짓과 행위에는 지향점이 없다. 그들은 그 상태로 머문다. 숲에서 나아가고, 지평선 위를 날며, 내장이 쏟아지고, 탯줄과 연결된 채로 그들은 그림에 정주한다. 물론 존재의 기거는 경험으로부터 기원한다. 경험 이후 퇴색된 기억을 재방문하며 형상을 만들 때 그 형상은 ‘내가 내 얼굴을 거울로 볼 때 거울에 비친 다른 얼굴’이다. 전지전능한 능동성으로 만들어낸 형상은 알고 보니 복수의 자화상이다. 어쩌면 ‘거울에 비친 다른 얼굴’과 그 ‘얼굴들의 연대’는 ‘자기애의 연장으로써의 타인 사랑’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불신을 종용하는 종류의 사랑, 불충분한 자기애를 투영하는 행위로써의 사랑, 잇따른 불행에 침잠해 고여버린 사랑. 이 고요한 난투와 같은 사랑이 궁극적으로 ‘나’ 바깥을 지향한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복수의 형상이 가시화하는 내러티브는 불신에 빚진 믿음으로 가득하다. 그의 불신은 다시 그의 경험에 빚진다. 이 맴돌기는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순환이기도 하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마치 불행의 원인을 탄생으로 돌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흡사하다. 이러한 직시를 통해서 불행은 서술될 수 있는 형상을 갖는다.
 
그림 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는 나름대로 서사 내의 규칙을 갖는다. 예컨대 가족 구성원은 종종 새에 비유된다. 여기에 ‘왜 새인가?’ 하는 의문은 불필요해 보인다. 형상은 거울에 비치듯 ‘튀어나온다.’ 그리면서 결정되는 형상은 ‘액체류’에도 해당한다. 이 액체류는 그 액체가 흘러나온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성질이 가늠된다. 예컨대 젖가슴에서 나온 액체는 의심 없이 젖먹이를 찾는 모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액체가 눈에서 나온 것과도, 하늘에 매달려 빛나는 것과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형상에 부과되는 평이한 선입견들 사이에서 김피리의 그림은 세계를 찢고 나온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에서 등장하는 생명체는 인간, 동물, 천사 같은 것을 닮았다. 그러나 그 존재들 사이의 구별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동물은 인간 같기도 하며, 인간은 천사 같기도 하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몸짓, 자세 따위도 서로의 것을 닮았다. 이처럼 김피리의 그림은 끊임없이 보는 자의 고정된 중심을 흩뜨려 놓는다. 이때 모티프와 형상의 상호 유사성이 유지되는 방식은 그림 속 서사가 품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연대를 구상한다.
 
그림의 형식은 그림의 내용이며, 또 그 역일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김피리의 그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의 그림에서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선과 면에 관한 접근이다. 김피리에게 드로잉은 선적인 것인데 반해,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은 면적인 것이다. 작업을 하기 전 드로잉을 선행하는 김피리에게 드로잉은 에칭으로도, 캔버스로도, 태피스트리로도 분화될 수 있는 선적인 것이다. 캔버스로 분화될 때 이 선적인 것의 면적인 것으로의 이행은 대단한 차이를 갖는다. 이때 윤곽선은 선과 면 사이의 ‘잉여’로 기능한다. 캔버스 위에 올라간 면 중 가장 선적인 것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그리게 되는 것은 형태의 윤곽이다. 윤곽을 경계로 생긴 면이 색으로 채워지며 윤곽은 경계면을 만든다. 즉, 이 윤곽은 그려진 것이라기엔 남은 것이다. 짧은 스트로크를 가진 색면은 캔버스의 면을 채우는 주요한 살갗이다. 이 겹친 색면은 태피스트리의 한 땀 한 땀이 서로를 침범하며 만드는 면과도 유사하다. 면의 선적인 면모이기도 한 붓의 스트로크와 펀치니들의 바늘땀은 면을 만드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서사로부터 잠시나마 멀어진다.
 
한편 ‘튀어나온’ 형상과 배경이 그림 안에서 배치되는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평성은 부드러운 안정감을 준다. 단독적으로 배치된 형상이든 여럿으로 배치된 형상이든 화면 안에서 구조적인 안정성이 도드라진다. 비탈진 언덕에 있더라도, 땅속에 있더라도, 긴급하게 화면을 가로지른다 하더라도 배치가 주는 구성적 안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고요한 안정감은 서사의 숨은 폭력성과 잔인성이 주는 긴장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편평한 배경이 놓임으로써 형상의 현재 상태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피리의 그림은 단순성이 부과하는 높은 밀도의 불안과 동행한다. 때로는 그림의 평화로운 형상과 전쟁 같은 서사가 충돌할 때 만들어지는 긴장감이 그림을 현실의 서사로 내려 앉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의 그림을 지탱하는 현실의 강력한 서사가 그의 그림이 갖는 형식적 자립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서사는 김피리가 의심하는 모성이면서 김피리가 담지한 모성처럼 기능한다. 김피리는 ‘모성을 적절히 잃어버리는 일’이 가족에게서 잘 분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과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도 자각한 바 있듯 뿌리로부터의 완전하고도 성숙한 분화야말로 고유한 뿌리의 잉여를 만든다.

 

박수지(독립 큐레이터)

 

 

작가 약력


 
학력
2023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일러스트레이션 석사
2019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 학사
 
주요 개인전
2025 네발 달린 짐승들, OCI미술관, 서울
 
주요단체전
2023 넥스트코드 2023: 다이버, 서퍼, 월드빌더,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21 청년작가 미술장터 2 , 마루아트센터, 서울
 
수상 / 선정
2024 2025 OCI YOUNG CREATIVES 선정, OCI미술관, 서울

 

연락
flqmrk95@gmail.com | @ kim_piri_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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